[일상] 포항 지진

2017. 11. 15

2:29 PM, 포항에 지진이 발생했다.

연구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있었는데, 2~3회 정도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더니 전원이 모두 내려감과 동시에 지진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발을 붙이고 있던 바닥은 상하좌우로 요동쳤으며, '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재빠르게 복도로 뛰쳐나왔더니 다른 연구실 선배들도 모두 뛰어 나오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비상구로 탈출하여 건물 밖으로 나오니 연구실 사람들은 모두 나왔고, 대부분 추위에 떨며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빠르게 공지가 이루어 졌고, 작년에 똑같은 일을 겪었기에 전보다는 혼란이 덜 했던 것 같다.

규모는 5.5로 공지되었으나 추후에 5.4로 낮추어 졌다. 하지만 진앙지가 지난번에 비해서 얕고 가까이 있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작년 지진보다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약 한 시간 뒤 쯤에 여진이 올 것이라 예측하여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2:49에 온 규모 3.6의 여진이 그 여진이라고 생각했던지, 대부분 사람들이 들어가더라.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라도 계속 남아 있었어야 했는데, 안전불감증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결국 모두 연구실에 들어갔다.

3:09 PM 또 다른 3.6의 여진을 연구실에서 당하고 난 뒤 다시 나와서 기다리다가, 커피를 마시러 갔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대부분의 가게들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운 좋게도 처음 간 커피숍에서 자리를 잘 잡아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4:30 PM 경에 연구실로 돌아가 장비를 간단하게 점검해 보았다.

큰 문제는 없는 줄 알았으나, 진공을 이용해야하는 장비는 정전으로 인해 급격히 진공이 풀려 당분간 사용이 어렵게 되었다. 다른 장비들은 그래도 멀쩡했고, 시약장...을 확인하려고 문을열고 보는 순간(4:49 PM) 4.6의 여진이 또 발생했다.

오늘은 정말 아닌가보다 싶어서 퇴근을 하였다. 사실 대학건물만큼 안전한 곳도 없지만서도 연구실이 4층에 위치하여 불안한 점도 있었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기까지가 오늘 겪었던 일들의 나열이다.


개인적으로 오늘의 지진은 정말 최악으로 기억된다.

우선 정전과 지진을 동시에 겪으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낮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밤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 였다.
작년 지진 시에는 밤에 났어도 정전은 일어나지 않아, 심각하다는 느낌을 덜 받았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정전이 되는 순간 사고가 정지되고 큰일이라는 생각 뿐이더라.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을 어느 정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공포라는 아주 일시적인 느낌만 생기고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앉아있을 때 2.8정도의 지진이 몸으로 느껴지더라. 이때 갑자기 소름이 돋으면서 여기 있으면 안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이 상태가 지속되겠지만, 천성이 단순한 덕분에 지금은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가 "드디어 나라가 손해를 감수하고 수능을 미뤘구나!"라고 감동할 때,
"드디어 나라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구나!"라는 생각도 해줬으면 좋겠더라...

대부분 사람들이 지진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을 것인데, 살면서 절대 겪지 말아야할 경험중 하나가 예측하기도 대응하기도 힘든 지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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